흔이, 아라비안 나이트라고 한다. 액자구성 처럼 전체가 커다란 하나의 이야기 속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포함되어있는데, 잘 아는 것 처럼 아내에게 배신 당한 왕이 새로운 신부와 결혼해서 다음날 아침 신부를 죽이고 신부를 구할수 없을때까지 계속 하려고 한다. 그러던 중 신부로 한 대신의 딸인 세라자드를 맞이 하게 된다. 세라자드는 밤에 왕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게 되고 왕은 이 이야기를 계속 듣기 위해 죽이지 않고 살려 두는데 이것이 천일하고 하루나 계속 되었다는 이야기다. 세라자드가 살아남기 위해 이야기를 해서 궁금하게 만들자 라고 생각했는지 그냥 해준 이야긴데 왕이 재미있어 해서 계속 하게 된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전까지 계속해서 죽어 나갔던 수많은 신부들을 떠올린다면 세라자드에게 현실은 무척이나 끔찍 했을 것이다. 눈을 떠야하는 아침이면 죽음의 문턱에 더욱 가까워 져야 했으니 한밤중에 왕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순간은 절대 깨지 않았으면 하는 꿈과 같았을 것이다.

어릴때 호기심이 무척이나 많았던 나는 항상 질문을 자주 하곤 했다. 물론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받아들이는 어른들이 다 그렇듯이 질문에 대해 좋은 대답을 듣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항상 핀잔을 듣거나 오히려 꾸중을 듣기도 했고, 아주 어릴때 부터 궁금한게 있으면 꼭 질문을 하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실천하기 힘들다는걸 깨달아 가기 시작했다. 항상 혼자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듣고 점차 혼자 의사소통을 하는 과정을 겪기 시작했고 호기심을 쌓아 두기 시작하게 되면서 공상이나, 망상? 에 빠져들기도 했다. 초등학교 5학년때 국내에 방영되기 시작한 엑스파일은 그런 나를 끌어 들이기 충분했다. 하지만 이제 10살 남짓한 아이가 보기엔 다소 으스스하고 오컬트 적인 요소도 다분했던지라 밤마다 이불폭에 얼굴을 파뭍고 보아야 했다. 엑스파일(the X-Files)은 마치 새로운 세계, 환상 같았고 내가 성인이 될 무렵 고등학교 3학년때 까지 계속 되었다. 너무나 오랜 시간동안 계속 되었던 이 이야기는 나에겐 천일야화 그 자체였고, 제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사실 무의식적으로 끝이 나야 한다는 것 조차 잊어버리게 되었다. 최후의 진실이 다가 온다는걸 깨닫기 시작했을때 이제 엑스파일이 끝이 난다는것이 어렴풋이 뇌리에 들어오기 시작했을때, 그리고 마지막 방송이 끝나고 티비를 끄고 어두운 방의 정적이 나를 감싸는 기분은 나의 유년기 - 청소년기가 몽땅 끝나버린, 날아가버린것 만 같았다.

삶이란건 아웅다웅의 연속이다. 내가 또 그렇게 자라온 시간을 기억 저편으로 보내면 또 다른 시간들이 나에게 다가 온다. 그리고 또 아웅다웅...삶은 어째서 이렇게 고달플까. 이 시간에 삶을 살고 있는 누구에게나 똑 같은 문제다. 어느 누군가가 군대를 가야 하는데 어디가 편하냐고 물으면 으레 어딜가나 모두 똑 같다는 대답을 듣기 마련이다. 상대적인 영향을 받고 인식을 하게 되며 그런 처지에 빠지게 된다. 단지 삶에서 죽음으로 다가가는 길 한가운데서 몸부림 치고(struggle) 있다. 이미 엔딩이 존재하는 그런 이야기에 우린 중간중간 살을 붙여 나가고 있는것이다. 하지만 그 길의 끝이 그저 한순간의 끝(End)라는 진정한 끝이 아니기 때문에 분투하고 있다. 고등학교때 한 선생님께서 김광석씨의 이야기를 자주하시곤 했다. 모두가 이미 알고 있던 삶의 마지막 모습은 아니였지만 그렇게 빨리 세상을 떠나 우리에게 큰 여운의 흐름을 남기는 이유는 삶의 연속성을 깨트렸다는 것도 있겠지만, 그전에 그가 걸었던 발 자취가 있기 때문이다. 삶의 괴로움과 함께 각자의 위치에서 몸부림 치고, 쉴새없이 변하는 감정의 치솟음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던 식스핏언더(Six feet under)가 마지막으로 향하고 있었을때 엔딩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 그냥 이대로 가슴에 뭍어 두고 싶었다. 삶에서 엔딩이 무엇인지는 너무나 명확하고, 비록 수많은 역경을 이기고 비로소 엔딩에 도달한 그들을 경외심과 함께 축복을 내려 주어야 함이 마땅하지만, 실제 현실에선 그 마지막을 지켜 본다는건 너무나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난 엔딩 보단 차라리 힘든 삶속에서 몸부림 치는것을 선택하고 싶었다.

결국 현실에 맞닿아 있음을 깨닫는건 그렇게 어렵지 않다. 문제는 의지의 움직임이다. 현실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회피하려고 하는 의지는 스스로를 더욱 더 괴롭게 만든다. 주인공 오필리어의 현실도피 의식이 나타나 있던(적어도 난 그렇게 봤다. 나만 그렇게 봤나..) '판의 미로'를 보았을때 현실에 맞닿은 의지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수 있었다. 어릴때의 나도 항상 새로운 곳을 원했고, 그곳을 꿈꾸었다. 아주 어릴때 부터 어른들을 위선과 독선, 아집으로 가득하다고 여겨 무척이나 증오했고 우주선을 타고 우리만의(나와 친구들의) 파라다이스를 찾아 떠나기도 했고, 절대 어른이 되지 않을거라 다짐하기도 했었다. 팥죽에 들어있던 새알을 먹은 만큼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극구 안먹으려고 하기도 했지만, 결국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것이 순리라는것을 깨닫고는 나 스스로는 내가 증오했던 어른들과 닮아 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곤 했다. 현실이란 결국 피할수 없는 길이지만, 그곳으로 향하는 것이 무척이나 두려웠나 보다. 항상 인생을 향해 줄다리기를 해야 하고, 내 뱉기 보단 무조건 삼켜야만 했던 고등학생이 되었을때 항상 나의 머릿속에 울리고 있었던 Radiohead의 Amnesiac은 나를 또다른 안식처로 향하게 했다. Amnesiac을 들으며 눈을 감으면 그곳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 졌고 언제까지나 그 안에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눈을 뜨면 현실은 여전히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고 나는 다시 그 속에 존재해야 했다. 모든이가 그랬던 것 처럼 고등학교 3년을 분투했지만 막판 반전으로 결국 얻은것 없이 허무하게 막을 내렸고 그 현실에서 삶은 지금도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결국 천일야화는 세라자드의 수많은 이야기에 왕은 배신감에 싸였던 이전의 마음을 버리고 세라자드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 라고 끝이난다. 이미 내가 언급했던 것 처럼 현실(아침)이 아닌 환상(밤)에서 살고자 했던 세라자드는 현실에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간다. 가끔 찰나의 행복으로 꿈이 깨지 않았으면 할때가 있다. 얼만큼의 가능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꿈이 현실이 되었다면 분명 미친듯이 행복한 사람중 한명일테다. 영화의 엔딩은 영화를 처음 부터 끝까지 본 사람들만이 만끽할수 있는 특권이다. 엔딩은 몇분이 채 되지 않지만 중간중간 지루했다거나, 잠시 집중하지 못했다는 핑계를 댄다면 잃어버리게 된 것은 수백가지가 될 것이다. 현재 데이빗 듀코브니(멀더)는 the X-Files 두번째 영화를 촬영중이고, 무거운 마음을 부여잡고 결국 엔딩을 보았던 식스핏언더는 오랜시간 동안 발버둥 쳐왔던 삶의 마지막이라는 그 속에서 안도와 편안함을 느꼇고 곁에서 지켜 보는 한 사람으로서의 슬픔으로 인해 나의 마음은 수도 없이 통곡했다. 삶은 아무리 애써서 기차역에 간다거나 기차를 타거나 하더라도 그 기차에서 내렸을 때 마중 나올 사람이 있을 거라는 보증은 없는 것과 같다.
이게 전부 뭔 헛 소리냐..간만에 마음먹고 뭘 한번 써보려고 했더니 안되는구나. 안될놈인가보다.